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네모난 캔버스에 빨간색만 가득한데 어떻게 봐야 하나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작품 이미지와 함께 질문이 올라왔다. 전시를 보다 색면회화 앞에서 당황한 관객이었다. “빨갛고 네모난 평면, 그게 다죠 뭐”라는 전문가의 냉소부터 “그냥 느끼면 되지 않나요”라는 애호가의 직관까지, 많은 답글에 담긴 공통의 정서는 추상회화는 어렵다는 인식이었다.
추상화로 묶이지만, 양상은 다양하다. 형상을 단순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리듬이나 선율을 가시화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그 무엇도 담지 않는 절대주의에 이르기도 한다. 시대마다 문화마다 의미도 달라진다. 1910년대 러시아 작가의 흰색 화면과 1970년대 한국 작가의 하얀 색면이 같을 리 없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면이 색채가 전부일 때, 뭘 봐야 할지 막막하고 뭘 느껴야 할지 당혹스러운 감정은 자연스럽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듯, 추상화는 보이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전한다. 한국에서의 추상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 작가들이 추상을 접하게 된 계기는 1930년대 일본 유학길에서였다. 당시 일본 화단은 서구에서 20세기 초부터 차근차근 전개한 추상과 초현실주의 같은 새로운 경향을 압축적으로 수용했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한국의 젊은 작가들도 이런 신경향에 눈떠 보이는 대로 그리기를 그쳤다.
그 선두에 유영국(1916~2002) 작가가 있었다. 1930년대 후반 정통 아카데미즘이 아닌 전위 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를 주 무대로 무의식의 표현과 기하 추상을 시도했다. 이때 교류했던 김환기(1913~1974), 이규상(1918~1964)과 함께 해방 이후 한국에서 결성한 추상 그룹이 ‘신사실파’였다. 신사실은 눈앞의 사실과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의미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으로 새로운 예술에 대한 기대가 넘쳤던 당대였다.
1948년 첫번째 신사실파 전시에서 유영국은 회화1, 회화2, 회화3으로 이어지는 10점을 선보였다. 서사가 삭제된 추상을 짐작하게 하는 제목이다. 이규상 역시 작품1, 작품2, 작품3으로 이름 붙인 10점을 출품했다. 평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단적으로 서강헌이라는 민족주의 진영의 문인은 “절망적인 민족문화 위기 앞에서 용허될 수 없는 큰 과오”라고까지 비판했다. 일본을 경유한 서구의 추상을 반민족적 성격으로 본 날 선 시선이었다.
이후 신사실파 2회전에서 유영국의 경향은 달라진다. 1949년 작 ‘직선 있는 구도’에서 제목은 여전히 대상 없는 추상인 듯하나 직선이 있는 구도 안에 형상이 표현돼 있다. 소위 한국적 정서로 인식된 꽃과 나무, 달을 닮은 자연 풍경이다. 3회전에서는 ‘산맥’, ‘나무’ 등으로 제목에서부터 자연을 취했다. 그리는 대상도 서사도 지워나간 서구의 추상과 달리 한국의 초기 추상은 주변 풍광을 단순화한 문학적 표현이 특징이다.
물론 한국전쟁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미술계는 시급한 당면 과제로 현대화와 세계화를 요구하는데, 현대적 조형 언어는 다름 아닌 추상이었다. 미국이라는 대타자의 주류 경향이 추상이었기 때문이다. 순수 시각성을 담아낸 듯한 추상화에도 역사적 맥락이 작동한다. 시대를 알면 더 보이는 추상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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