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시대도 꺾지 못한 색채의 환희...사랑할 수밖에 없는 유영국의 ‘산’

2024.08.31.I여성신문
한국 1세대 추상화가 개인전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
10월10일까지 PKM갤러리

‘한국 추상회화’를 파고들면 반드시 유영국(1916~2002) 화백을 만나게 된다. 다채로운 색의 스펙트럼, 절제된 기하학적 구도, 점·선·면·색의 조화까지, 지난 세기에 활동했던 작가의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됐다. 우리가 기억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화가다.

유 화백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막을 올렸다.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라는 제목 아래 그의 1950~1980년대 유화 작품 34점을 모았다.

한국 1세대 추상화가인 유 화백은 한국의 자연을 사랑했다. 높은 산, 깊은 바다, 우거진 나무들, 붉은 태양 등의 ‘본질’을 탐구했다. 한국 전통 자연관과 서양의 추상미술을 접목해 독창적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장엄한 자연의 힘을 마주한 화가는 그 에너지의 정수를 화폭에 매우 아름답고도 절제된 형태로 옮겨 놓았다. 그의 그림은 대담하고 강인하다가도 섬세하고 온화하다. 철저하게 계산된 기하학적 구조도, 유기적인 형태와 표현주의적인 붓 터치도 보여준다. 그의 그림 속 산은 웅장하면서도 평온해 보인다. 바다 역시 고요히 일렁이는 듯, 끝없이 파도치는 듯 신비롭다.

유 화백은 특히 산을 사랑했다. “산을 그리다 보면 그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다. 내 그림 속 산에는 여러 형상의 삶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산에는 그림의 모든 요소가 있다”고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가 그린 장엄하고 강렬하고 감동적인 산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산 그림을 포함해 작가 사후 최초로 공개되는 소품들도 여럿이다.

기운차고 자신감 넘치는 작품들이 많지만, 화가의 삶엔 풍파가 많았다. 유 화백은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울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일본 도쿄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는데, 1943년 태평양전쟁 여파로 귀국해 한동안 제대로 붓을 잡지 못했다. 결혼해 아이들이 태어나자 캔버스를 제쳐 두고 어부로, 양조장 주인으로 일하며 가장 노릇을 했다. 48세에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암흑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그는 좌절해 무너지지 않았다. 서구의 다양한 미술 사조를 수용했고, 일본과 한국의 미술계와 활발히 교류했다. 미술계에서 명성과 직위를 얻은 후에도 성실하고 겸손하게 그림을 그렸다. 2002년 타계할 때까지 작업실에서 매일 작업에 몰두했다. 평생 400여 점의 유화 작품을 남겼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선 그의 더 많은 작품이 전 세계 관람객들과 만나는 중이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이다. 유 화백의 첫 유럽 개인전으로 오는 11월24일까지 열린다. PKM갤러리 전시는 10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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