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유영국·이성자 회고전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 개최
정방형 캔버스가 반듯한 선으로 균형감 있게 나뉘었다. 서로 대비되는 빨강색과 초록색은 형과 면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강렬한 원색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게 한다. 산과 태양 등 자연에서 마주한 아름다움을 오로지 기하학적 요소로 표현해낸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추상주의 화가인 유영국 화백의 1971년작 ‘무제’다. 표현은 절제돼 있지만 장면을 그린 풍경화가 아닌 덕에 오히려 그의 감상은 캔버스에만 머무르지 않고 무한히 확장된다.
한국 추상미술을 이끈 김환기·유영국·이성자 화백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회고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유영국, 이성자’가 서울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김환기의 미국 뉴욕 시기에 제작된 1960~1970년대 작품과 유영국의 1970~1990년대 조형실험 작품, 그리고 이성자의 1960~1970년대 ‘대지 시리즈’ ‘도시 시리즈’ 등 세 작가의 주요 작품 26점을 소개한다.
1963~1974년 뉴욕에 머물렀던 김환기 화백은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참가한 이후 순수 추상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그의 말년 화풍을 대표하는 전면점화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많은 실험과 고민을 통해 만든 섬세한 점과 선, 면과 이를 통해 조형 공간을 다양하게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점과 선이 무수히 반복되는 점묘는 추상 공간의 무한함을 나타낸다. 뉴욕에서 김 화백은 수묵을 닮은 색채로 그만의 독보적인 동양적인 추상화를 선보이며 한국 근대 회화의 추상적인 흐름을 개척했다는 평가다.
유영국 화백은 한국 최초로 추상주의 화풍을 시도한 작가로, 1935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서 수학하며 추상화를 처음 접했다. 추상주의는 당시 도쿄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미술 운동이었다. 유 화백은 고향인 경북 울진의 높은 산과 깊은 바다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기본 조형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형·색·면을 사용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작들은 그의 작업이 절정에 달했던 1970년대 기하학적 추상화가 주를 이룬다. 유 화백의 작품은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추상의 실험·변형, 절제된 조형미가 특징적으로 나타나 자연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이성자 화백은 한국 추상 미술사의 1세대 여성 작가로 1951년 프랑스 파리로 떠나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여성과 대지’는 이성자의 1960년대 작품세계를 특징 짓는 주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개인이 여성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고통, 고국에 두고 온 자식과 모국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향수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그의 작업에는 음과 양, 질서와 자유, 부드러움과 견고함, 동양과 서양 등 상반된 개념이 공존한다. 화려한 색채와 끊임없는 변화에 더불어 1만3000여 점에 이르는 다작(多作)은 그를 한국 추상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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